2015. 2. 5. 개봉
세계적인 갑부 듀폰 집안의 후계자 존 듀폰이 미국의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데이브 슐츠를 쏴 죽인 사건. 영화를 보기 전에 앞뒤 맥락없이 이 얘기를 들었을 땐 그 속사정이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존 듀폰이 레슬링팀을 결성하여 슐츠 형제를 후원했다는 식의 전후 설명이 추가되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익숙한 돈 많은 사람들의 갑질과 추악한 행태를 떠올려 보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지요.
이 영화가 아쉬운 점은 이렇게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의 이면을 보여주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는 것입니다. 존 듀폰과 동생 마크 슐츠의 정신적 내상과 그 원인이 뭔지에 대해서는 초반부터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내면을 조금 더 파고드는 것까지도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중반 이후에도 영화는 더 나아가질 않고 동어반복과 변주에 머무는 게 문제였지요. 나중에 가면 좀 지칩니다.
감독의 관심이 듀폰과 동생 슐츠 같은 비정상적인 인성 그 자체를 탐구하는 데 있었다 하더라도, 연출이나 시나리오가 딱히 좋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처음엔 동생 슐츠였다가 듀폰으로 바뀌는 가운데, 피해자 형 슐츠가 더 궁금해지기도 하는 상태에서 영화가 끝나버리거든요. 한마디로 초점이 불분명합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는 형 슐츠 역할을 한 마크 러팔로입니다. 알려진 대로 스티브 카렐이 열등감에 쩐 소시오패스 갑부 연기를 열연하며 놀라운 변신을 하고, 채닝 테이텀도 몸 사리지 않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최선을 다합니다만, 일상의 톤을 잃지 않으면서 진짜 평생을 레슬링만 하면서 살아 온 남자처럼 보이게 연기하는 마크 러팔로를 능가할 수는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