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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4. 개봉

흔히 할리우드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자국 중심의 세계관이 문제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항변을 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창작자와 그가 속한 사회가 보편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데, 또 그것을 소비하는 관객의 취향과 눈높이도 고려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할 때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외의 다른 시각이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태도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이 작품도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자임하는, 미국이란 나라의 국민들이나 할 고민을 다루고 있습니다.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는 대테러 전쟁 말입니다. 그러나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미국 혹은 미국인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정치적 보수파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총기 사용을 옹호하고 대테러 전쟁의 필요성도 긍정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딜레마는 남아 있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전쟁 상대를 절대악으로 몰고 그냥 잊어버릴 수 있는가? 우리의 분노는 고스란히 우리에게 되돌아와서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는가? 라고요.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제로 다크 서티론 서바이버 같은 영화와 다른 점이지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1월의 미국 극장가를 강타 – 3주 연속 1위 (2월 1일 현재 2억 4천 7백만불) – 하고 있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 있는지도 모릅니다. 쉽게 어느 쪽이 맞다고 손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이 너도나도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덧붙이면서 관심이 확대재생산 되었을 것이니까요.

감독의 연출력은 네이비씰 훈련 장면과 전투 시퀀스에서 빛을 발합니다. 최소한의 인원과 물량만 가지고도 충분한 재미와 서스펜스를 뽑아내는 실력이 발군입니다. 벌크업까지 해가며 노력한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아주 맘에 들었어요. 보통 배우들이 수염을 기르고 연기할 때 섬세한 감정표현을 해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런 핸디캡을 정말 쉽게 이겨내 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에 많이 감동받았습니다.

시나리오가 교과서적으로 좋은데, 이건 생생하고 솔직한 체험을 다룬 수기가 원작인 덕분이죠. 실존 인물인 크리스 카일의 삶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각색이 어렵진 않았을 것 같아요. 플롯 포인트도 캐릭터의 변화도 다 갖춰져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이 영화의 느린 템포가 별로였어요.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을 관객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좀 깁니다. 뻔한 것을 길게 보여준다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의 자칭 보수파들이 이 영화가 보여준 솔직함과 균형감각의 반에 반만 따라가려고 노력해도 훨씬 더 좋은 나라에서 살 수 있겠지만, 현실은 폭식 투쟁이나 하고 확성기로 치졸하게 집회를 방해하는 수준이니까요. 말을 말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