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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3. 개봉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동명의 베스트셀러이자 그 해 발표된 최고 스릴러 소설 중 하나였던 이 작품은 원작자인 길리언 플린이 직접 각색에 나서면서 그 완성도에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원작은 약간의 서술 트릭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이코 스릴러였기 때문에, 소설이나 TV보다 더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어필하는 영화 매체에서 애초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스릴러 각색에서 주의할 점은 책으로 보면 머릿속에서 자기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장면도, 일단 영화화되면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려서 스릴의 강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비교적 원작에 가깝게 진행된 초반 30분이 극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극중 에이미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독자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변화하며 재미를 주었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선 에이미가 로자먼드 파이크라는 배우의 이미지에 고정되는 바람에 변화의 여지가 적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영리하게 각색 방향을 잘 잡았기 때문이다. 원작에서처럼 사이코 스릴러로서의 분위기를 잡는 것을 좀 더 강조했다면 지루해졌을 장면들을, 조금씩 과장하고 단순화하여 세련된 블랙 코미디 쪽으로 살짝 톤을 바꿔 준 것이 주효했다. 그로 인해 극 전체의 리듬감이 살아나서 결말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생겼다. 길리언 플린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아 보인다.

그 결과로, 영화는 소설보다 조금 더 풍자적인 색채를 띠게 되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백인 여피 커플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지옥으로 바뀌는가를 통해, 완벽한 결혼에 대한 환상과 욕망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여주면서 그런 판타지에 편승해 돈 버는 것에만 신경쓰는 언론의 행태를 비웃는 일종의 블랙 코미디에 가까운 스릴러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완벽한 결혼에 대한 강박이 심한 곳에서는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 속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실제 자신에게 저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 결과 결혼은 역시 지옥같지만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라든지, 혹은 저런 사람이랑 결혼하면 무섭겠다 같은 반응이 대다수였다. 미국 현지에서 제작비의 2.5배가 넘는 1억 6천 7백만불을 벌어들인 이 영화의 국내 흥행이 170만명 선에 그친 것도 이런 반응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데이빗 핀처는 역시 서스펜스 연출의 대가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그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템들과 만나 좋은 영화를 계속 많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뛰어난 신체 표현력을 활용하여 에이미라는 인물의 섬뜩함을 잘 표현해 내었다. 일종의 소시오패스인 주인공을 과연 어떻게 연기해낼 것인가가 관심 포인트였는데, 기대를 뛰어넘는 열연을 보여주었다. 이런 배우와 함께 하면 연출자는 많은 짐을 덜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