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리안의 영화들을 한 줄로 꿰는 테마는 이런 거였죠. 개인이 가족 제도 – 혹은 유사가족 – 와 빚는 갈등과 혼돈, 그리고 관계의 재구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초기 가족 3부작부터 시작해서 할리우드 진출 이후에도 그의 영화는 시대와 배경을 달리하며 쭉 그랬지요.
이런 주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있는 것이라서, 그간 리안의 승승장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는 기본적으로 영화를 잘 찍는 사람이죠. <라이드 위드 데블>같은 근사한 영화가 그의 필모에선 다소 뒤처진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그에게 늘 변수이고 갈등의 근원이었던 ‘가족’이, 이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그냥 상수로 나옵니다. 망망대해에 던져진 파이와 리처드 파커 커플은 누구의 힘으로도 바꿀 수 없는 관계니까요. 파이는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 영화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뛰어난 시각 효과는 이런 주제를 확실하게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거나 듣고 싶지 않아도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 그리고 그들과 우리를 둘러싼 ‘사실들’은 언제나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변화는 전작인 <테이킹 우드스탁>에서도 보입니다. 예전 리안 영화라면, 여관 가족 아니면 우드스탁 패거리들과 주인공의 갈등 구도가 중심이었겠죠. 그러나 영화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결국 하나가 되고 마는 그 에너지에 집중합니다. 저는 이게 리안 영화가 맞나 싶어 어리둥절할 정도였어요. 나중에 <테이킹 우드스탁>이 <라이프 오브 파이>를 기획중일 때 찍은 거라는 얘기를 듣고나니 이해가 갔죠.
덧붙이자면, 이런 리안의 시각 변화는 일시적인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의 데뷔작 <쿵후 선생> 부터 <테이킹 우드스탁>까지 모든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각본가였던 제임스 샤무스(James Schamus)가 이번 영화에는 참여하지 않았거든요. 앞으로 리안은 자신만의 길을 모색하려 하겠죠. (참고로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원화평이 감독을 맡은 마블 코믹스의 수퍼 히어로 영화 <The Hands of Shang-Chi>에 제작자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기본적으로는 가족의 갈등이 주된 이슈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주는 메시지는 언뜻 보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주어진 조건을 그대로 인정하라고 하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개인의 의지나 발상의 전환 같은 것을 강조하니까요. 이것은 자칫 약육강식의 법칙이나 이기심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식의 ‘사회진화론적 신화’를 그냥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한다는 기득권자의 논리로 악용되기 쉽습니다. 그럴 경우 이 영화는 그저 흔한 자기계발서와 똑같은 수준으로 떨어지겠죠. 실제로 원작의 내용을 경영학 세미나에서 그런 식으로 활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간의 본능에 대한 판단은 자의적인 것이고 하나의 ‘이론’일 뿐입니다. 얼마든지 반증할 수 있으니 불변하는 것도 아니고요.
세상엔 그런 것들 말고도 변치않는 사실들이 꽤 있습니다. 부모-자식 관계나 피부색, 지나버린 과거 같은 것들 말이죠.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런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려고 하다가 자기 분열의 고통에 빠지고 맙니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궁극적인 변화는 바뀌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감수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이 영화의 주제가 ‘현실의 감수’가 아니고 ‘변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