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2012] 앤젤스 셰어

   * 스포일러가 아주 많습니다. 주의하세요.

   이 영화는 켄 로치의 신작으로, 올해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보통의 켄 로치 영화들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주인공이 결국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쳐 좌절하는 이야기들이죠. 이번 영화 역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수 차례의 폭행 전과가 있는 주인공 로비는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아이도 낳지만, 도무지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는 상태입니다. 일단 여자친구의 아버지부터가 그를 싫어합니다. 갓난아이를 보러 간 병원에서 다짜고짜 로비에게 달려 들어 묵사발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요. 그리고 로비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동네 패거리들도 문제입니다. 게다가 로비는 뺨에 깊게 새겨진 흉터 때문에 번듯한 직장도 못 갖죠. 그런데 돌파구가 하나 생깁니다. 자신이 위스키 감별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폐양조장에서 발견된 위스키 한 통의 값이 어마어마하다는 것도요.

   기본적으로 루저 케이퍼 코미디로서의 시나리오 구성과 연출이 거의 완벽합니다. 자칫 허황된 성공담이 되고 말 수도 있었는데, 적절한 완급 조절로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보는 동안 ‘이러다 또 좌절하면서 끝나겠지. 수렁에 빠지고 말겠지.’ 이런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켄 로치 영화는 그렇게 끝나니까요. 그래서 로비의 말도 안되는 계획이 성공하고, 엔딩까지 희망적으로 끝났을 때 저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진한 감동과 위로까지 받았거든요.

   물론 이런 해피 엔딩이 허황되다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그런 특수한 재능이 없으면 그냥 막장 인생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맞는 말입니다. 로비가 행복을 얻는 것은 이 영화가 끝나는 바로 그 시점일 뿐이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도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느꼈던 성취감과 작은 연대의 기억은, 로비가 앞으로의 인생에서 겪을 시련과 맞서는데 훌륭한 버팀목이 되긴 할 겁니다. 영화 관람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 또 다시 고달픈 삶의 현장에 나서야 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대부분의 켄 로치 영화는 저소득층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산층 인텔리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주제와 결말을 지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 참혹한 현실을 보라, 뭐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진짜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희망과 버텨낼 힘이 필요하지, 준엄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려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켄 로치는 전작인 <에릭을 찾아서>(2009)에서 희망적인 쪽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이번 영화에서 의미있는 결실을 맺습니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영화들을 보며 ‘정말 참혹하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영화처럼 희망의 기억을 품은 영화를 보면서 ’나도 어떻게든 같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을 거야’ 라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 훨씬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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