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렇게 드라마로 만들어진 작품을 한꺼번에 붙여서 상영하는 건 영화제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죠. 그러나 올해 1월에 방영되었고, 구해 보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러닝 타임 300분의 5부작 드라마를 굳이 영화제까지 와서 봐야하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 때문에 많이들 피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거 볼 바엔 그냥 커피 마시며 쉬고 만다’는 생각이었는데, 딱히 대신 볼 영화를 찾지 못해서 그냥 보게 되었습니다. 마침 밤차 타고 새벽에 떨어져서 피곤하기도 했으니까 쉬엄쉬엄 볼 생각이었죠.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앵글이나 미장센이 TV 화면보다는 극장 스크린에 맞게 구성되어 있어서 보는 맛이 있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자신의 <강령>이나 <절규> 같은 작품들 – 제가 참 좋아하는 작품들이기도 하죠 – 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캐릭터의 연원과 변화 과정, 그리고 파국을 정확하게 짚어갑니다. 캐릭터 구축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원작은 작가가 너무 들떠 있고 자기 능력에 도취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을 정도로, 허술하게 써 놓고 그냥 지나쳐 버린 장면들이 꽤 있었거든요.

남녀를 불문하고 압도적인 캐스팅이 보는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개인적으로 다섯 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우는 4부에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내뿜었던 이케와키 치즈루였습니다. <조제, 호랑이…>에서도 그랬지만 일본 여배우 답지 않게 과감한 부분이 늘 매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장점이 극대화되어 있거든요. 또한 <도쿄 소나타>에서 부부로 나왔던 고이즈미 교코와 카가와 테루유키는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비극의 씨앗을 품고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펼칩니다.

이랬으니 구로사와 기요시의 팬이기까지 한 저로서는 300분 동안 잠을 잔다거나 쉴 수가 없었던 겁니다. <도쿄 소나타> 이후 거의 3년 반 만에 극장에서 그의 작품을 보는 거라 흥분했을 수도 있고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망령이 망친 여러 사람의 인생. 그리고 그 죗값을 되돌려 받은 여자의 운명.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