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주의하세요.

늘상 들리는 사건 사고 소식에도,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이 끔찍한 사건을 일으킨 범인의 가족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낼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케빈에 대하여>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고등학생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어머니는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 갑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의 기억, 어릴 때부터 형성된 아들과의 적대적 관계, 결국 모든 것을 파괴하고 만 그날의 일들까지.

영화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우선, 원작에 있었을 복잡한 심리 묘사를 비교적 잘 쳐낸 것 같습니다. 또한 시각적 구성도 좋지요. 샷의 선택과 색감, 그리고 잘 고안된 편집 스타일이 주인공 에바(틸다 스윈튼)의 정서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설정된 티가 너무 나서 효과가 반감되는 장면도 꽤 있긴 합니다.

틸다 스윈튼의 화면 장악력도 여전합니다. 그의 연기만 봐도 본전 생각은 안 나니까요. 다만, 음악이 좀 많이 거슬립니다. 몇몇 감정 씬들에서 가사를 이용한 초보적인 대위법을 시도하는데 결과는 실패입니다. 역시 가사 있는 음악을 영화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쥐잡이(Ratcatcher)>(1999)로 데뷔하여 촉망받는 신예 감독 – 적어도 영국에서는 – 이었던 린 램지는, 두 번째 영화 이후 거의 10년 만에 들고 나온 이 영화로 연출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제 안정적으로 차기작들을 찍어나갈 수 있겠지요. 그러나 데뷔작에서도 그랬듯, 여전히 소재의 선정성을 넘어서는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반 이후 인물들 간의 관계와 사건의 실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만한 시점이 지나가면, 서서히 흥미가 떨어지다가 예측가능한 결말에 이르러 입맛을 다시게 되니까요.

우선, 주요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너무 단순하고 변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식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다. 이건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일 겁니다. 그런데 주인공 에바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감정 상태에서 거의 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이와의 대립 과정을 보여주는 플래시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오를 내뿜으며 평행선을 달릴 뿐이죠. 그래서 극이 진행될수록 에바의 감정은 현재와 과거를 막론하고 가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에바는 직업적 성공과 육아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고, 모성의 신화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으며, 아들과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엔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도 해봤을 법한 사람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영화에서 표현되는 그녀의 감정은 훨씬 더 복합적으로 드러났어야 합니다. 원작 소설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겠지만 이 영화는 감정적으로 과장된, 일종의 불완전한 사고 실험에 그치고 맙니다.

이것은 부모 캐릭터를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그야말로 개념만 있고 허공에 떠 있는 캐릭터들이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장면에서 그들은 공감 능력 제로인 로봇 같습니다. 그들의 성장 배경과 사회 생활이 궁금해질 수 밖에요.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제목은 We Need to Talk About ‘the Parents’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연출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관객들이 씬이나 시퀀스를 따라가는데 꼭 필요한 정보(장면의 심리적 배경이나 주요 쟁점 같은)를 아예 주지 않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거든요. 이럴 경우 관객은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딴 생각을 하게 되죠.

이것은 이른바 예술영화 기획으로 만든 작품들이 쉽게 저지르는 오류입니다. 그런 영화일수록 감독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관객들도 자기와 같이 생각하려니, 이런 것쯤은 알고 있으려니 생각하면서 배경이나 쟁점을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밝히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고 쌓이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관객과의 교감은 완전히 실패하고 맙니다. 대다수 ‘예술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장면을 불명확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걸로 유명한 다르덴 형제의 영화가 특유의 불친절함에도 감동을 주는 것은, 정보를 주는 타이밍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레 시작한 화면을 보고 궁금해진 관객들이 인물에게 충분히 관심을 보일 때가 되어서야 정보를 슬쩍 던져주고, 또 그걸 통해 관객이 감정을 곱씹을 시간까지 배려해 주거든요.

다른 것은 다 관두고라도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은 확실히 문제가 있습니다. 범죄자 어머니의 회한과 죄책감을 전면에 내세우고,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공포와 준비되지 않은 모성의 두려움을 연결 고리 삼아, 범죄를 특정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켜 버리거든요. 사회적인 문제를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은 진짜 원인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방해할 뿐,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오히려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가는 지름길을 열어 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