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주의하세요.

  사실 이 영화는 그닥 끌리지 않아서 볼까 말까 했었죠. 웃긴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혼을 위해 아내에게 남자를 붙여 준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앞섰거든요. 그렇지만 영화는 걱정스러웠던 부분을 간단하게 뛰어넘습니다. 굳이 현실적인 논리를 갖다 붙이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코미디 영화 설정에 맞게 캐릭터를 극단으로 몰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극적 논리를 만들어 주거든요. 한국 영화들이 보통 무리하게 상황 설명에 집착하다가 자멸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목도 그렇고, 이 영화를 부부 관계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결혼이나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주인공 정인(임수정)의 자기 극복기예요. 일종의 중2병 때문에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같이 사는 사람까지 궁지에 내몰던 여자가 이유야 어찌 됐건 직업도 갖게 되고 남편의 유치찬란한 계획에 걸려들어 마음 고생도 하면서 차츰 성장하는 얘기. 

  정인의 모습은 몇 년 전의 제 모습과 아주 비슷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세상 모든 것에 대해 투덜대기 좋아하고, 상대가 듣던 말던 속에 있는 얘기 다 해야하고. 남보다 자기가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지금 이거 밖에 못하고 있는 건 과거의 어떤 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죠. 그래서 감정이입이 참 잘됐습니다. 실제로 똑같은 문제로 아내와 다투기도 했고요. 곁에서 무지 갑갑했을 아내의 마음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죠.

  이런 종류의 미성숙은 복잡다단한 현실의 문제들을 직접 처리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다 보면 자연스레 극복되는 것입니다. 혼자서 꽁꽁 싸 안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대신, 나의 예리한 판단력과 직관이 옳다고만 믿는 대신, 직접 부딪치면서 크고 작은 성공과 좌절을 겪다 보면 달라집니다. (그런데 간혹 이 영화의 리뷰를 보다 보면 초반부에 정인이 눈치보지 않고 쏟아내는 ‘독설’을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제가 보기엔 그런 분들은 극중 정인과 같은 병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엔딩에 가까워질 수록 영화는 다소 힘이 떨어집니다. 결국 모든 것은 밝혀지게 되어 있고 어떻게든 결론은 내야 하죠. 그런데, 정인이 큰 폭의 성장을 겪는 반면 두현(이선균)은 여전히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찌질한 상태인 게 문제가 됩니다. 영화 막판에 나오는 두현의 변화는 진심어린 것이라기보다는, 남자들이 자주 하는 위기 모면을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하거든요. 그래서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엔딩이 어색한 겁니다. 다시 재결합한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변한 게 없는 남자와 재결합하는 게 문제인 거죠. 어쩌면 앞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애초부터 남자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임수정은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캐릭터 자체가 이제껏 그가 나온 영화 중에서 가장 돋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잘 형상화했다고 할까요. 특히 정확하게 관객의 귀에 꽂아 주는 대사 전달력은, 굵은 목소리 톤 때문에 잘 안들리는 두 남자 배우들에 비해 월등히 좋습니다. 시침 뚝 뗀 얼굴로 별짓을 다하는 류승룡과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이선균의 연기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굳이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않더라도 가족이 있고, 직장 동료가 있고,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뭔가 잘 안 풀리고 벽에 부딪칠 때,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혼자 잘나서 이만큼 온 것도 아니고, 남이 가로막아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도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