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영욕이 교차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드라마틱한 소재이죠. 그러나 스타워즈가 3D로 재개봉하는 시대에, 난데없는 무성영화라니. 이건 좀 의도가 빤한 기획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칸에서 남우주연상도 받았고, 미국 내에서 각 지역 평론가협회에서 주는 상을 쓸고 있으니까 뭔가 좀 더 있겠지 싶었지요. 아.. 그러나 그런 기대는 무참히 부서져 버리고 말았어요.

  영화는 내내 가짜 감정으로 일관하고 있고 심지어 옛 세대에 대한, 그리고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심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먼저 조지 발렌타인과 페피 밀러의 만남부터 재회까지 그리고 뮤지컬 영화로 재기하기까지를 다루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정말 나이브하죠. 캐릭터는 평면적이고. 무성영화니까 이 정도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중후반에 가면 정말 화딱 깨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조지 발렌타인이 자기가 출연했던 영화를 다시 보는 장면. 자신의 연기를 보며 욕하는 거까진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그렇다고 영사기를 넘어뜨리고 필름까지 불태우는 건 좀..  그렇다고 조지 발렌타인이 예술가로서 자부심이 전혀 없는 얕은 인간으로 설정된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불 속에서 죽어가면서 껴안고 있던 필름통은 바로… 음, 더 얘기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무성영화는 덜 발달된 원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920년대 후반의 무성영화는 요즘의 최고 수준 영화들과 맞먹는 수준으로 올라가 있었죠. 무르나우의 <선라이즈>(1927)를 보세요. 발성영화는 단지 수요 창출을 위한 신기술이었을 뿐입니다. 물론 당시에도 조지 발렌타인처럼 신기술을 무시했다가 쪽박 찬 사람들은 많았죠. 새 흐름에 저항하다 비장하게 전사하지도 않고, 완벽히 자신을 낮춰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지도 않으면서 ‘예술가’라는 제목을 당당하게 붙일 수 있는 건가요. 너무 무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