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사랑은 순간의 기쁨과 강렬한 쾌락으로 유지되는 감정이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감정의 깊이가 얕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현실이 이러니,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 어쩌구 하는 것들이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등장하나 봅니다. 사실 오래된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신뢰와 성실이지 절대 사랑이 아니거든요.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커플이 있다면, 오히려 권태와 무감동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봐야 합니다.

 

<아이 엠 러브>는 자신도 모르게 찾아 온 사랑의 기쁨을 감각적인 스타일로 포착한 영화입니다. 빠른 커팅과 인상적인 샷, 섬세한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차곡차곡 감정을 쌓아가다가 눈부시게 폭발하거든요. 이 영화에선 요리를 사랑의 주된 매개체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꽤 의미심장한데, 사랑과 식도락은 그 속성상 통하는 데가 있기 때문이죠. 훌륭한 음식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그것이 혀에 닿는 순간 황홀한 즐거움을 맛보지만, 긴 여운을 음미하기보다는 다음번의 즐거움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식도락은 사랑과 매우 유사한 감정의 사이클을 그립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엇보다 틸다 스윈튼의 영화입니다. 영화가 주는 감동의 7,80%가 그의 몫이죠. 단아하고 이지적인 명문가 며느리에서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같은 감정까지, 이토록 호소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동세대에 또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이태리 영화에 굳이 영국 여배우를 캐스팅했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50세가 넘은 여배우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아이템과 연출이라니. 여배우가 조금만 나이를 먹어도 출연할 작품이 마땅찮게 되는 한국 영화계는 빈곤한 상상력을 반성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아이 엠 러브>가 고전적인 불륜 영화의 공식을 따른다는 점에서 새로울 게 없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간추린 줄거리는 우리나라의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구성점들이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고, 메인 플롯과 서브 플롯이 물 흐르듯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탄탄하게 잘 구성된 각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영화는 껄끄러운 부분이 없는 각본을 기초삼아 매체의 표현 가능성을 극대화할 때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런 기준에 꼭 들어맞습니다.

 

불륜은 배우자와 가족에겐 일종의 배신이자 사기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어차피 언젠가는 스러지고 말 연약한 것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며 굳이 새로운 사랑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요? 영화는 즉답을 피하면서 이렇게 반문합니다. 창업주의 유훈을 배신하고 임직원들의 장래는 모른 체 하면서 금융 자본가로 변신하는 것과, 자신의 마음의 소리와 감정에 솔직하게 행동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쁜 일이냐고요. 답은 명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