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아주 조금 있습니다.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주고 2시간 남짓한 시간을 극장에서 보내기로 결정할 때는, 선택한 영화가 날 어떻게든 요리해서 감동과 재미를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공부하기 위해서, 마니아적 책임감으로, 또는 직업상의 이유로가 아닌 다음에는 대부분 이런 이유로 극장을 찾습니다.

내러티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점을 고려해서, 관객들이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있기만 하면 바라던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 두세 개를 공략하면서요. 물론 매번 성공하진 못하죠. 완벽한 성공을 거두기는 더 어렵고요.

그런데 이 영화 <엉클 분미>는 관객이 가져갈 의미와 감동의 종류를 미리 결정해 놓고 만든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관객에게 편안한 감상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고요. 관객이 자신의 기억과 상처를 헤집어 뭔가를 꺼내오기를 요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입을 꾹 다문채 아무런 의미도, 감동도 주지 않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기억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백명이 보면 백명이 다 다른 느낌과 이야기를 갖고 극장문을 나서게 되겠지요. 결국 이 영화는 관객과 충분한 상호작용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숲과 그 안의 사람들, 그리고 관객의 기억입니다.

사실 저도 이 영화의 모든 부분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장면에서는 여느 영화 이상의 울림을 주더군요. 예를 들면 아내와 아들의 영혼이 찾아온 시퀀스에선 지금은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공주와 물고기 시퀀스에서는 외면당했던 때의 아픔과 새로운 만남의 희열이, 분미와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침상 시퀀스에서는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북받쳤거든요.

이런 건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세심하게 짜낸 영화가 주는 감동과는 확실히 다른, 대안적인 종류의 것입니다.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전작 <열대병>에선 과감한 생략과 점프로, <징후와 세기>에선 차이와 반복으로 대안을 모색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는 보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판타지를 적극적으로 채용함으로써, 관객의 기억을 소환하는 것을 전제할 때 무한한 경우의 수를 가지는 독창적인 영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압도적인 시각 디자인입니다. 인서트처럼 들어가는 그림같은 풍경들과, 데이 포 나잇으로 찍은 숲 속 밤 장면들은 시각적 포만감과 함께 기억을 뒤져 볼 시간을 허락합니다. 특히 밤 숲 장면들은 모르긴 몰라도 데이 포 나잇으로 찍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이 영화의 소통 방식이 더 낫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형적인 내러티브 영화의 소통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재미와 감동을 주는 좋은 영화들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낯선 영화적 소통도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는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