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머니와 딸 사이는 자주 영화화되는 소재죠. 가족 안에서도 정서적 연대가 무척이나 강한, 그래서 유난히 갈등도 많은 관계이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에선 제목 그대로 엄마의 재혼이 갈등의 요소입니다. 그것도 다 큰 딸하고 대여섯 살 차이 밖에 안나는, 한참 어린 남자 하고의 재혼이죠.

부모의 재혼은 제3자가 보기엔 당연한 일일 수 있습니다. 혼자된 어른이 다시 새로운 반려자를 만난다는 것은 개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거니까요. 삶의 질도 높일 수 있고요. 그러나 자식 입장에선 머리로는 동의할 순 있어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긴 힘든 부분도 있기 마련이죠.

재일 한국인 감독 오미보는 이러한 주인공의 딜레마를 차분하게 풀어갑니다.  미세하게 컷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감정을 쌓아가고, 비교적 정확한 타이밍에 터지는 웃음으로 감정의 골을 차근차근 메워갑니다. 그러는 동안 주인공은 트라우마에 갇혀 주위를 돌아볼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되고요. 특이한 것은 주인공의 플래시백 시퀀스인데, 답답한 스타일에 색깔도 안 맞게 코디한 주인공의 의상이 포인트가 됩니다.

기술적인 완성도는 높은 편입니다. 특히 촬영, 조명이 좋은데, 실내 장면은 필름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잘 찍혔습니다. 일본 영화 보면서 후지필름의 다소 차가운 녹색 대신 따뜻한 노란색 화면을 보니 약간 적응이 안되더군요. 어쨌든 이제 저예산 영화에서 굳이 필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은 확실해졌습니다.

여러모로 괜찮은 영화였지만, 어머니의 불치병 설정은 좀 아쉬웠습니다. 극의 흐름상 굳이 이런 게 없어도 충분히 감동을 줄 수 있었으니까요. 최근 한국 영화에서 많이 써먹은 것이기도 하고요. 뭐 설정 겹치는 거는 그렇다 쳐도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좀… 어머니가 용서를 구하는 장면은 울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그러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한계와 맞서고자 하는 삶의 자세는, 좋은 이야기에서 언제나 그렇듯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놓쳐서는 안될 걸작은 아니지만, 챙겨보면 좋을 소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