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작년에 부산영화제를 놓친 관계로, 엄청 오래 기다리게 된 이 영화. 작년 칸에서 미카엘 하네케에게 황금종려상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히든>(2005) 같은 걸작도 감독상에 그쳤으니 더 대단하겠지 하는 식의, 정말 순진한 기대 말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 의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전체주의는 차별과 배제가 체제 유지 수단이므로, 필연적으로 악의 체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영화 속에서처럼, 특정한 하나의 도덕과 종교와 생산체계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 개인을 억압하기 시작할 때 비극은 시작됩니다.

귀족이 지배하는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각각 다른 역할을 나눠 맡은 남자들과 그들의 가정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흑백 화면이라 복식은 짜맞춘 듯 똑같고한 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 툭툭 튀는 편집 때문에 누가 누군지 구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어디로 카메라를 돌리든 비슷한 풍경과 답답한 구도가 나오는 마을 풍경까지 더해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
빠진 느낌이 들죠.

이런 구성은 영화 속 얘기들이 어느 한 가족에, 한 마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습니다.  가부장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권위, 아들은 일꾼, 딸은 추악한 성욕의 대상, 아내가 있더라도 외도는 마음대로인 이 마을은 당대 오스트리아, 나아가서는 유럽 사회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차 대전 직전이 배경인 이 영화의 아이들이 자라서 2차 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독일 나치즘이 히틀러와 그 추종 집단 일부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아마 그게 맞겠지요. 감독도 명백히 그런 의도로 영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물론 돈이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잡아 버린 21세기의 오늘에 경고장을 날린 걸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감독의 의도가 대단히 새로운 통찰이거나 신선한 문제 제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영화 보는 내내 답답하고 아쉬웠던 것은, 결국 이걸 얘기하기 위해 2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동안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그랬던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 괴로운 이야기를 보면서 고작 한 줌의 아이디어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 간다는 건 관객의 희생이 너무 크니까요. 

감독의 전작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베니의 비디오>, <퍼니게임>, <히든> 같은 경우에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곳곳에 심어 놓아 유쾌하지 않은 내용임에도 꽤 즐겁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는 더 아쉬웠던 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