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2010) – 그 남자의 빗나간 순정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일급 각본가로 경력을 쌓아 온 김대우 감독은 두번째 연출작을 4년만에 내놨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좀 실망이었습니다. 뛰어난 코미디 감각과 기발한 디테일, 대사 등은 녹슬지 않았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김빠진 콜라맛이랄까요. <스캔들>에서 비롯된 인물 설정 및 내러티브 구조를 <음란서생>에서 재활용하고, <방자전>에서도 또 써먹는 바람에 매너리즘에 빠진 듯 합니다.

특히 방자 캐릭터는 어수룩한 코미디 캐릭터였다가, 느와르의 주인공처럼 몽룡과 기싸움을 하더니 멜로물의 바보같은 순정파로 변신을 거듭합니다. 그에 따라 이야기 전개는 춤을 추고요. 캐릭터와 내러티브는 결국 하나라는 진리를 또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저는 특히 이 영화에 나온, 섹스에 대한 남성중심적 시각을 지적하고 싶어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각각 책임지고 있는 조연 캐릭터인 마영감과 변학도는 이런 문제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둘 다 룸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인데, PD 수첩을 빌리자면 노련한 부장 검사와 한껏 달아 오른 신참 검사 정도?

문제는 이런 인물들을 다루는 감독의 태도입니다. 현실에선 끔찍할 수 있는 이런 인물들이 연기도 잘 하고 웃음까지 주니 정겹게 느껴진다는 거죠. 명백한 성희롱을 하고도 장난이었다며,  호의의 표시였다며 슬쩍 빠져나가는 일과 무엇이 다른가요.

또 다른 문제는 방자가 춘향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아름답게 포장되긴 했지만 겁탈에 가까운 첫날 밤을 치르고, 우직하게 춘향만을 보호하고 따르며, 바보가 된 춘향을 보살핀다… 어디에도 춘향의 의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딱 한번, 몽룡의 금의환향 소식을 들었을 때 춘향은 자기 선택을 합니다. 나머지는 방자의, ‘사랑’이란 이름의 아집과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런 철저한 남성중심주의적 시각은 춘향이란 캐릭터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원래의 춘향은, 신분 차별과 권력에 맞서 자기 사랑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주장한 주체적인 캐릭터이니까요. 춘향선양회에서 문제제기를 하려면 이런 부분을 짚었어야 합니다.

똑같은 마초 영화라도, 김기덕 영화보다는 개봉 5일만에 100만을 넘기는 이런 류의 상업 영화가 훨씬 위험하고 문제도 뿌리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문제제기가 적은 이 현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P.S.
스탭 시사 때 봤는데, 엔딩 크레딧에 촬영중 세상을 떠난 연출팀 막내 겸 스크립터에 대한 추모 글이 있을까 해서 유심히 봤습니다. 없더군요. 대신 스크립터로는 올라갔습니다. 흔히 알려진 것처럼 열악한 처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작업 중 쌓인 스트레스를 못 이겼다고 합니다. 제작사가 책임질 일도 아니고 추모글이 의무사항은 아닙니다만, 그 친구의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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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아 전 그냥 넋놓고 웃기만 하다가 나왔는데, 이런 관점으로 보게되니 또 다른 느낌입니다. 영화가 그저 웃기만 하는게 아니라 지금의 사회상을 나타내고 있다는것을 깜박했습니다. ^^: 좋은 감평입니다. 마지막의 스크립터 얘기는 좀 슬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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