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2010) – 임상수의 야심찬 역습

1.
<하녀> 리메이크 소식을 들었을 때, 전 코웃음을 쳤습니다. 사실 김기영 감독이 쌓아 올린 원작(과 리메이크들)의 아우라는 굉장히 강력하거든요. 이런 프로젝트는 누가 달려 들어도 의미있는 결과를 내기 힘듭니다. 게다가 감독이 임상수니까요. 김기영의 편집증적 세계와 임상수의 조롱 섞인 블랙 유머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잖아요. 뒤이어 터진 김수현 작가와의 불화도 입방아에 올랐고요.
그러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본 영화, 칸 경쟁부문에 떡하니 초청됩니다… 여기서 저는 지조없이 살짝 마음을 고쳐 먹습니다. 칸이 작품 수준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 분명히 뭔가 다른 게 있겠구나. 한번 봐 보자… 뭐 이렇게요.
과연 임상수 감독은 자기 방식대로 밀고 나갔더군요. 원작에서 공포와 혐오, 측은함의 ‘대상’이었던 하녀를 ‘주체’로 자리매김하여 주인집의 비인간적 폐쇄성을 맛보게 합니다. 그리고 특유의 블랙 유머로 곳곳을 채워 나갑니다. 이로써 모티브와 설정만 동일할 뿐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전형적인 임상수표 영화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관해 비판하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평은 이 영화를 원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려 하거나, 에로틱 서스펜스라는 홍보 문구를 너무 믿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사회 풍자 드라마에 가까운 이런 류의 영화에선, 오히려 단순한 플롯일 때 더 잘 나오는 경우가 많죠.

2.

저는 <하녀>의 칸 수상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봅니다. 비판적인 주제 의식을, 단순한 플롯에 실어 매우 ‘영화적’으로 잘 풀어 냈기 때문이죠. 임상수 감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영화라는 매체의 표현력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이건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든데, 만약 수상한다면 작업에 참여한 모든 스탭들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려야 할 겁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똘똘하게 나오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후반녹음을 담당한 블루캡의 사운드 디자인이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이 회사가 추구하는 특유의 풍부한 사운드가 잘 맞아 떨어져서, 징그러울 정도로 기름진 분위기가 나옵니다.
임상수 감독이 이번에 상을 받는다면, 앞으로 경쟁 부문의 단골 손님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구보다 야심 많고 영리한 감독이라, 어떻게 만들면 영화제에서 인정받는지 금방 파악이 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실행에 옮기겠죠. 박찬욱 감독 같이, 방법은 알지만 자기 야심을 채우기보다 하고 싶은 걸 다 해 보는 타입은 아니니까요.
3.
극장을 나서면서, 제가 떠올린 영화는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1995)>이었죠. 루스 렌들의 <유니스의 비밀>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 역시, 줄거리와 주제 의식이 비슷하고 파격적인 결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경멸어린 조소로 가득한 이 영화, <하녀>가 여러모로 한 수 위인 것 같네요 :)
P.S.
저는 프롤로그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좀 더 담백하게 풀 수도 있었을 텐데,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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