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본 영화에 대해 좋은 얘기들은 많으니,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겐 이 영화가 무척 껄끄러웠어요. 뿐만 아니라 전작인 <밀양>도요. 이유는 두 영화의 주인공들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폭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주체와 세계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작용 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주체 ‘나’가 겪는 세상의 모든 불의에는 어떤 식으로든 ‘나’의 잘못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죠.

<밀양>의 신애는 자신의 부주의와 약간의 허세 때문에 딸을 유괴당합니다. <시>의 미자도 중학생 손자와의 긍정적인 소통에 실패하고 있으므로, 손자의 비행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죠.

그럼에도 두 여주인공은,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한계와 잘못을 성찰하지 않습니다. 모든 잘못은 자기 외의 다른 누군가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망설임없이 다른 사람을 단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일종의 자기 연민에 빠집니다.

더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런 영화의 내용 전개에 대해 반론 제기가 불가능하도록, 주인공이 겪는 개인적 불행을 설정해 놓은 것입니다. 어떠한 형태의 반대 의견도 그런 불행 앞에서는 설 자리를 잃게 되죠.  따라서 주인공의 행위는 간단히 합리화됩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억압이라고 생각해요. 내러티브 속의 타자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행해지는 이중의 억압. 돌이켜 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선 늘 존재하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데뷔작이었던 <초록물고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런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 비해 반대 세력의 악행이 명백한 편이라 알아채기 힘들 뿐이죠.

인상적인 롱테이크 샷 몇 개와 아름다운 시 낭송 내레이션, 진정성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있었지만 위와 같은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계를 뛰어넘은, 이창동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 봅니다.